공사비지수 138, 계약금액 조정은 청구한 쪽만 받는다

2026년 3월, 현대건설은 서울 정비사업장 네 곳에 공사비 증액 공문을 보냈다. 사업장마다 꺼낸 조항이 달랐다. 은평 대조1구역에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 장기화를 이유로 도급계약서 제33조 제1항의 불가항력 조항을 근거로 들었고, 강서 등촌1구역에는 물가변동(에스컬레이션) 조항을 원용했다. 송파 마천4구역에는 공사비 산출 기준시점을 2021년 7월에서 2026년 1월로 바꾸자고 요구했다. 마천4구역의 요구액은 3,834억원에서 6,733억원으로, 75.6% 증액이다.
배경에는 수치가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설공사비지수(2020년=100)는 2026년 6월 138.22로 전년 동월 대비 5.5%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2%였다. 2020년 이후 누적으로 공사비지수는 33.7% 올라 소비자물가(18.4%)의 1.8배 속도로 움직였다. 품목별로 보면 시멘트 평균판매단가는 2020년부터 4년간 58% 올랐고, 2026년 3월 한 달 동안 아스팔트는 10.2%, 폴리프로필렌수지는 18.1% 상승했다.
물가가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는 계약금액이 조정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조정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조정이 "그 자체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약당사자의 상대방에 대한 적법한 계약금액조정신청에 의하여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06. 9. 14. 선고 2004다28825). 이 글은 공공공사와 민간공사의 조정 규칙, 청구가 실패한 판례, 2026년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을 정리한다.
공공공사의 조정 요건
국가계약법 제19조와 시행령 제64조가 기본 규칙이다. 계약 체결일부터 90일 이상 지나고, 입찰일을 기준으로 산정한 품목조정률 또는 지수조정률이 3% 이상 오르내리면 계약금액을 조정한다. 한 번 조정한 뒤에는 조정기준일부터 90일이 지나야 다시 조정할 수 있다. 천재지변이나 원자재 가격 급등이 있으면 90일이 지나지 않아도 조정이 가능하다(시행령 제64조 제5항).
조정 방법은 품목조정률과 지수조정률 중 하나만 쓰고, 계약 체결 시 계약서에 명시한다. 품목조정률은 품목마다 수량과 등락폭을 곱해 합산하는 방식이라 정밀하지만 증빙 부담이 크고, 지수조정률은 생산자물가지수 등 공표 지수로 산출한다. 계약 이행 중에 방법을 바꿀 수는 없다.
특정 자재만 급등했을 때는 단품 슬라이딩이 있다. 공사비(재료비·노무비·경비 합계)의 0.5%를 초과하는 자재의 가격이 입찰일 기준 15% 이상 오르면 그 자재에 한해 조정한다. 자재 비중 요건은 원래 1%였는데, 우크라이나 전쟁발 자재 급등기에 배관재·전력케이블·목재 등이 15% 넘게 오르고도 비중 요건에 걸려 조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자 2023년 11월 16일 시행령 개정(대통령령 제33861호)으로 0.5%로 낮췄다.
절차 규정도 청구를 전제로 짜여 있다. 발주기관은 계약상대자의 청구를 받은 날부터 30일 안에 조정해야 하고(시행규칙 제74조 제9항), 조정 신청은 준공대가를 받기 전까지, 장기계속공사는 각 차수별 준공대가를 받기 전까지 해야 한다(공사계약일반조건 제22조 제3항). 수급인이 신청하지 않으면 하수급인이 그 사실을 발주기관에 통보할 수 있는 조항도 있다(같은 조 제7항).
청구가 실패한 판례 세 건
첫째, 청구 전에 받은 돈은 조정받지 못한다. 위 2004다28825 판결은 조정신청 전에 확정적으로 지급받은 기성대가를 물가변동적용대가에서 제외했다. 조정기준일 이후에 시공한 부분이라도 신청보다 기성 수령이 빨랐다면 그 부분의 증액은 사라진다. 법제처 생활법령정보도 준공대가(차수별 준공대가) 수령 전까지 신청해야 조정금액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한다.
둘째, 조정 방법은 계약 체결 때 정해진다. 한국철도공사와의 계약에서 수급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지수조정률 적용을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계약 체결 시 지수조정률을 원한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품목조정률로 조정해야 한다고 보아 수급인 패소로 판단했다(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7다213470).
셋째, 조정을 배제하는 특약은 원칙적으로 유효하다. 아산배방 집단에너지시설 공사에서 국외 구매분을 고정불변금액으로 정한 특약이 있었고, 2008년 환율 급등 후 시공사가 조정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가계약법 제19조가 계약담당자가 지켜야 할 사항을 정한 규정이지 강행규정이 아니며, 시행령 제4조의 부당특약에 해당하지 않는 한 배제특약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7. 12. 21. 선고 2012다74076 전원합의체). 물가상승 가능성을 계약자도 예상할 수 있었다며 특약을 유효로 본 후속 판결도 있다(대법원 2018. 11. 29. 선고 2014다233480).
반대 방향의 판결이 민간공사에서 나왔다. 부산고등법원은 도급인 귀책으로 착공이 8개월 지연되는 사이 철근 가격이 약 2배로 오른 사안에서,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을 근거로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무효로 판단했고 대법원 심리불속행으로 확정됐다(부산고법 2023. 11. 29. 선고 2023나50434). 다만 이 판결을 소개한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특수한 사실관계에 한정된 판단이라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국토교통부도 2022년 4월 유권해석에서 민간공사의 조정 배제 특약이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상대방의 이익을 제한하면 해당 부분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냈다. 민법상 사정변경 원칙으로 가격 급등을 다투는 길은 사실상 닫혀 있다. 대법원은 가격이 1,620배 오른 사안에서도 사정변경 적용을 부정했다(대법원 1963. 9. 12. 선고 63다452).
민간공사에는 법정 조정이 없다
국가계약법의 조정 규정은 공공계약에 적용된다. 민간 도급계약에서 물가변동 조정을 강제하는 법률은 없고, 국토교통부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에 조정 조항이 있으나 표준계약서 채택 자체가 권고 사항이다. 국토부는 2023년 8월 표준도급계약서를 고쳐 공표 지수 변동만으로 조정을 청구할 수 있게 했고, 2025년 4월 고시(제2025-204호)로 특정 자재 조정 요건을 공공과 같은 0.5%로 완화했다. 그래도 조정은 당사자 합의를 전제로 한다.
그 공백이 분쟁으로 나타난 대표 사례가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이다. 시공사업단은 2022년 4월 공정률 53%에서 공사를 중단하고 유치권을 행사했다. 재착공 후 시공단이 청구한 추가 공사비는 총 1조 1,385억원이었는데, 한국부동산원은 이 중 1,621억원만 검증해 377억원 감액을 권고했고 나머지 9,664억원은 검증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검증 결과에 강제성이 없다고 밝혔다. 조합이 자체 의뢰한 검증에서는 물가상승 명목 청구 3,617억원 중 2,075억원을 감액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에도 같은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서울·수도권 정비사업과 리모델링 13개 현장의 공사비 협상 결과를 집계한 보도에 따르면 협상을 거친 뒤에도 평균 53.77% 증액됐다. 신반포22차는 평당 569만원에서 1,300만원으로 140% 올랐다. 서대문 홍제3구역은 2024년 5월 평당 784만원으로 합의하고도 2026년 7월 시공사가 다시 321억원 증액을 요구했는데, 공문이 도착한 시점은 조합원 동·호수 추첨이 끝난 뒤였다. 합의에 이르지 못해 계약이 해지된 사례도 이어진다. 코오롱글로벌은 2026년 4월부터 7월 사이 부산 만덕3구역, 대전 가오동1구역, 부산 하단1구역 세 곳에서 시공 계약이 해지됐고, 부산 우동1구역에서는 조합이 시공사 선정을 취소하자 DL이앤씨가 420억원 대여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제도 개정의 방향
최근 개정은 계약서와 절차를 향한다. 국토부는 2024년 1월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를 배포하면서 시공자가 세부 산출내역서를 계약서에 첨부하고, 물가 반영은 소비자물가지수 대신 국가계약법상 지수조정률 방식을 쓰도록 했다. 2025년 8월에는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을 고쳐 건설사가 입찰 제안서에 물가변동 등 공사비 변동 기준을 의무적으로 명시하게 했고, 같은 해 11월부터 적용됐다. 공사비 분쟁으로 공사 중단이 우려되면 조정위원회를 지체 없이 열도록 하는 도시정비법 개정안은 2026년 2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본회의 통과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도급 단계는 법이 먼저 움직였다. 하도급법 제16조의2에 따라 수급사업자는 공급원가가 변동하면 원사업자에게 대금 조정을 신청할 수 있고, 원사업자는 신청일부터 10일 안에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2025년 3월 국회를 통과한 하도급법 개정으로 부당특약 중 일정 유형은 해당 부분이 무효가 된다.
정리
공공공사에서 조정을 받으려면 네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요건(90일 경과, 입찰일 기준 3% 또는 단품 0.5%·15%)이 성취됐다는 산정 근거, 준공대가나 차수별 준공대가를 받기 전이라는 시점, 계약 체결 때 정해 둔 조정 방법, 그리고 품목조정률 방식이라면 품목별 수량과 가격 등락을 입증할 자료다. 민간공사는 계약서에 적힌 조정 조항과 그 문구가 사실상 전부이고, 배제특약이 있으면 판례상 원칙적으로 유효하다.
세 건의 대법원 판례에서 수급인이 진 지점은 셋 다 계약과 청구의 단계였다. 청구보다 기성 수령이 빨랐고, 계약 체결 때 조정 방법을 정하지 않았고, 계약서에 배제특약이 있었다. 조정 청구가 성립하려면 입찰일 기준 가격, 자재 투입 시점과 수량, 기성 청구와 수령 시점이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물가 상승 자체는 공표 지수로 증명되고, 그 상승분이 해당 계약의 어느 공정에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수급인이 보관한 기록으로 증명된다.
· 국가법령정보센터: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4조(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 현행 조문
· 국가법령정보센터: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4조(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
· 법제처 생활법령정보: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
· 대법원 2006. 9. 14. 선고 2004다28825 판결(조정신청 필요·기성대가 제외)
· 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7다213470 판결(조정방법 선택)
· 대법원 2017. 12. 21. 선고 2012다74076 전원합의체 판결(배제특약 유효)
· 김앤장 법률사무소: 물가변동 배제특약 효력을 제한한 부산고법 2023나50434 판결 해설
· 기계설비신문: 민간공사 물가변동 배제특약에 관한 국토부 유권해석(2022. 4.)
· 김앤장 법률사무소: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 개정(국토교통부 고시 제2025-204호) 해설
· 대한경제: 건설공사비지수 7개월 연속 역대 최고(2026. 4.)
· 이데일리: 2026년 6월 건설공사비지수 138.22(건산연 인용)
· 뉴스웨이브: 시멘트 7개사 평균판매단가 4년 58% 상승
· 그린포스트코리아: 현대건설, 서울 정비사업장 4곳 증액 공문(2026. 4.)
· 머니투데이방송: 홍제3구역 321억원 재증액 요구(2026. 7.)
· 서울경제: 둔촌주공 추가 공사비 1조 1,385억원 검증 경과(2023. 7.)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 정비사업 13곳 공사비 협상 후 평균 53.77% 증액(2025. 2.)
· 뉴스웨이: 코오롱글로벌 정비사업 계약 연쇄 해지(2026. 7.)
· 이코노미스트: 공사비 갈등과 시공사 교체·소송(2026. 5.)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 주요 내용(2024. 1.)
· 하우징헤럴드: 도시정비법 개정안 국토위 통과, 공사비 분쟁 조정 의무화(2026. 3.)
·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6조의2(공급원가 등의 변동에 따른 하도급대금의 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