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잔고는 쌓이고 생산 인력은 부족하다, 조선 빅3가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는 이유

2026년 7월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HD한국조선해양이 독일 지멘스의 소프트웨어 부문과 본계약을 맺었다. 선주나 기자재 업체가 아닌 소프트웨어 회사와 맺은 본계약이다.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중인 조선사가 왜 지금 소프트웨어에 돈을 쓰는지를 실적, 인력, 세 회사의 투자 순서로 정리했다.
실적과 수주잔고
뉴스핌이 2026년 7월 23일 보도한 집계를 보면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의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약 2조 원이었다.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합산 약 2조 3,000억 원이고, 연간 합산 영업이익 전망치는 9조 원을 웃돈다. 세 회사의 수주잔고는 약 190조 원(1,370억 달러)이다.
2010년대 중반 수조 원대 적자와 도크 폐쇄를 지난 회사들이 지금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골라 수주하는 위치에 있다. 그런데 2026년 초부터 업계에서 "모래성 호황"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배를 지을 사람이 부족해서다.
생산 인력은 얼마나 부족한가
매일일보가 2026년 2월 19일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조선업 미충원율은 14.7%로 전 산업 평균 8.3%의 두 배 수준이다. 빈자리를 채우는 쪽은 외국인 인력이다. 2024년 기준 조선 3사가 직접 고용한 E-7 비자 인력은 3,333명으로 전체 E-7 근로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아시아경제가 2026년 2월 27일 보도한 회사별 현황을 보면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삼호는 2026년 1월 기준 전체 인력 약 5만 7,000명 가운데 직영이 약 2만 3,000명이고, 직영 외국인 근로자가 약 1,700명으로 10% 안팎이다. 협력사까지 더하면 외국인 비중이 20%에 가깝다. 삼성중공업은 직영 약 1만 명 가운데 외국인이 1,397명이고 협력사를 포함하면 20%를 넘는다. 한화오션은 직영 1만 명에 협력사 인력 2만 명이고, 협력사 인력의 25%가 외국인이다.
정부의 인력 공급 방향은 2026년부터 바뀐다. 고용노동부가 2025년 12월 22일 발표한 2026년 고용허가제 외국인력 도입 규모는 8만 명이고, 2023년 4월부터 2025년까지 한시로 운영한 조선업 별도 쿼터는 2025년 말에 종료돼 제조업 쿼터로 통합됐다. 조선업만 따로 배정받던 인력 통로가 없어진 상태에서 받아놓은 배를 지어야 한다.
수주잔고 190조 원은 앞으로 몇 년 동안 그만큼의 배를 실제로 지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납기가 밀리면 지체보상금이 나가고 도크 회전율이 떨어진다. 그 손실은 지금의 영업이익에서 빠진다.
세 회사가 돈을 쓰는 곳
HD한국조선해양이 지멘스와 맺은 계약은 "차세대 마린 플랫폼" 구축이다. 선박 설계와 생산, 공급망 관리, 품질관리, 유지보수 과정에서 생기는 정보를 3D 모델 기반의 단일 데이터로 통합하는 시스템이고, 장기적으로는 로봇과 자율 생산설비가 작업 상황을 스스로 판단해 수행하는 "피지컬 AI" 조선소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HD현대는 2030년까지 생산성 30% 향상과 공사 기간 30% 단축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2026년 3월 경남 함안 칠서공단에 배관 자동화 공장 "파이프 로보팹"을 가동했다. 배관 설계부터 자동 물류, 가공·계측, 정렬, 용접까지 전 과정을 로봇과 비전 AI로 처리하고, 연간 약 10만 개의 배관 스풀을 생산한다.
한화오션은 2026년 6월 NC AI에 비전 인식 기반 용접 전용 모델과 협동로봇 기반 자율 용접 모델 개발을 발주했다. 개발된 시스템은 상선과 특수선 건조 공정에 적용한다. 매일일보 2026년 3월 2일 보도 기준으로 한화오션의 실내 용접 공정 로봇 수행 비중은 67%이고, 메트로신문 2026년 5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2030년까지 3,000억 원을 투자해 이 비율을 100%로 올릴 계획이다.
세 회사 모두 부족한 사람을 채우는 대신 조선소의 작업 방식을 바꾸는 쪽에 돈을 쓰고 있다. 정부도 같은 방향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6년 조선해양산업 R&D 예산은 전년 대비 23% 늘어난 3,200억 원이다.
발주처의 평가 기준
이런 투자를 한국 조선사만의 움직임으로 보기는 어렵다. 매일일보 2026년 3월 2일 보도는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설계·생산·물류·품질 데이터를 통합한 자동화 조선소 역량이 수주 경쟁력의 변수로 올라왔다고 전했다. 어느 조선소든 도크가 몇 년치씩 차 있는 상황이라 선주가 확인하려는 것은 납기이고, 공정 데이터로 납기를 보여줄 수 있는 조선소가 유리해진다.
로봇보다 먼저 놓아야 할 것
이 그림에는 전제가 하나 깔려 있다. 로봇 용접이든 AI 공정 예측이든 설계·생산·품질 데이터가 같은 기준으로 연결돼 있어야 작동한다는 점이다. 현장의 사정은 아직 그 전제와 거리가 있다. 설계 데이터 따로, 생산 실적 따로, 협력사 공수는 엑셀로, 품질 기록은 또 다른 시스템에 흩어져 있는 조선소가 많다. 이 상태로는 어떤 AI를 얹어도 쓸 만한 예측이 나오지 않는다. HD한국조선해양과 지멘스도 계약의 첫 항목으로 "단일 데이터"를 앞세웠다.
데이터를 연결하는 작업은 프로젝트·블록·공정·직종을 관통하는 코드 체계를 세우고, 공수·일정·원가가 같은 기준으로 집계되도록 정리하고, 현장 실적이 제때 시스템에 들어오게 만드는 일이다. 이 작업이 끝나야 로봇과 AI 투자가 생산성 수치로 돌아온다.
정리하면 조선 빅3는 수주잔고 190조 원을 미충원율 14.7%의 인력 구조로 소화해야 하고, 그래서 로봇과 데이터 플랫폼에 투자하고 있다. 그 투자가 납기와 원가로 이어지는지는 설계·생산·품질 데이터를 같은 코드 체계로 묶는 기초 작업이 먼저 됐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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